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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증기기관차 모음 어떠한 증기기관차들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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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기기관차 모음

오늘은 어떠한 증기기관차들이 있는지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증기기관차는 쉽게 말하자면 옛날 기차를 말하고있으며 오늘날의 기차가 만들어지게 된 계기라고 생각하시는 편이 쉽게 이해가 되실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터우형 증기 기관차

터우형 증기기관차는 대한민국에서 사용되고 있는 4-6-0 바퀴배치 증기기관차의 총청으로 모두 6종입니다. 이 명칭은 미국에서 10륜 증기 기관차를 뜻하는 용어로 텐 휠러에서 유래되어 볼드윈사에 의해 간편 철도로서 처음 수입되어 일본식민지시대 말기인 1945년대까지 발주가 되었습니다.

개업 당초는 본선의 예항에 사용되고 있었지만, 고성능 대형차의 도입에 의해 지선이나 화물로 전환, 특히 졸업의 선구자인 만포선이나 평선은 빠른 졸업의 선구자입니다.

터우형 증기기관차는 4개의 전륜(2축), 6개의 공륜(3축)을 공통으로 갖추고 있으며, 후륜은 없습니다. 한국에서 사용된 터우형 차량은 전부 텐더식이며 아울러, 전 차량이 1,680mm 공륜을 채용하고 있으며, 최고속도는 95km/h로 같았습니다.

터우형은 1910년도에는 가장 대표적인 차량으로 대량 도입되었으며, 이후 해방 직전까지 계속해서 채용이 이루어졌습니다. 파시형 증기 기관차와 함께 여객용도로 널리 사용되었습니다. 터우 1형부터 터우 6형까지 존재합니다.

터우 1형은 경부 철도주식회사가 최초로 도입한 차량으로 1906년에 총 12량을 도입하였는데 이 중 6대는 2기통 복식 피스톤 구조이며 나머지 6대는 일반적인 단식 구조를 취했습니다.

제작은 미국의 볼드윈 사가 하였으며, 국내 반입은 부산 초량 공장에서 조립하여 이루어졌습니다. 이 차량은 이후 통감부에 의해 인수가 되었으며, 그 후로 본선 여객에 쓰이다가 점차 지선 등지로 투입되었습니다. 이후 단식 과열 식으로 개조되었습니다.

 

모가형 증기 기관차

모가형 증기 기관차는 미국인 실업가 모스에서 설치권을 사 일본이 설립한 경인철도가 미국에서 수입한 것입니다. 첫 생산업체는 미국 브록스 기관차 공장으로 부품 부문으로 도입이되어 인천공장에서 조립되었습니다.

한국 입국일은 1899년 6월이였으며 회의 종료일은 1899년 6월 17일이었습니다. "모굴"라는 명칭은 2-6-0 차륜 배치를 하고 증기 기관차의 미국 이름의 약어로, 일본 강점기 한국과 만주에서는 열차에 이름을 붙이는 습관입니다.

경인선에는 객차 6량, 화물차 28량으로 합해 34량의 증기 기관차가 도입되었지만, 풀러 증기 기관차의 대규모 도입으로, 본선의 운행 빈도는 서서히 감소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폐쇄 시기는 불명하지만, 모카로 보이는 2량의 기관차가 1960년대에 리스트에 실려있습니다.

그러나 1960년대 이후의 기록이 없어서, 이 차가 언체 폐차될지는 아직까지 불명하다고 합니다.

모카형 증기기관차는, 전륜 2륜과 동쪽 6륜을 가지며, 차량을 연결하지 않고 물이나 석탄을 직접 기관차 본체에 싣는 탱크씩 증기기관차입니다. 당시 경편철도에 가까운 기관차로 바퀴 배치로 추정하면 차축당 5t의 하중이 됩니다.

이러한 저축, 2-0축 배치는 당시 가난했던 경인철도에 대응하기 위한 것으로 여겨줬으며 이후 비슷한 차량이 추가적으로 도입되지 않은 원인으로 보여지고 있습니다.

 

미카형 증기기관차

 

1910년대 후반 남한에서 도입된 증기기관차는 화물을 끌기에 적합하지 않아서 조선 총 철도청은 화물용 증기기관차를 도입하기로 하였습니다. 1919년대에는 미국의 볼드윈에 12종의 자가용이 도입되어 주로 경의선에서 사용되었습니다.

아르코에서 12종의 자가용이 수입되어 경의선, 함경선에서도 사용되었습니다. 그 후 1927년부터 1945년에 걸쳐서 298형의 미가 3가 도입되어 패기 4형과 마찬가지로 보수 중의 부품 교환이 쉬워졌습니다.

1950년대에는 미카 5형이 등장하면서 기존의 미카 1형과 2형은 국산 갈탄을 사용하도록 개량되었습니다. 중국은 YS 11형 증기기관차를 수입하여 그것을 '미가 6' 이라고 명명하고, 일본의 D51형 증기기관차는 방 연판을 고쳐 '미가 7'로 개칭되었다고 합니다.

 

등록문화재 등록

 

등록문화재 제 414호로 지정된 미가 3-304호는 1944년 일본에서 건설돼 부산 신의주 등 주요 철도노선 226만 4000Km를 운행하던 한국총독부 경성공장에서 조립이 되었습니다.

1978년 어린이날에는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로 열차를 볼 수 없었던 제주 사무공원에 보내졌으며, 1963년 인천 공작 창구에서 제작된 비둘기 승용차가 연결 전시되어 있습니다. 특히 중유로 전환하지 않았고, 석탄처럼 원형을 유지하는 유일한 증기기관차입니다.

등록문화재 제 415호로 지정된 미가 3-129호는 1940년 일본에서 건설돼 조선총독부 경성역에 건설된 경부선 등 주요 간선도로에서 운행되었습니다. 1981년 10월 부산까지 2년간 열차로 달릴 동해 남촌(남성)투어 월리엄 F-소장을 구출하기 위해서 적진에 돌진한 기관차로서 알려져있습니다. 1950년 7월 19일 한국전쟁 중 북한군에 포위된 제24보병 사단장입니다.

당시 기권은 인민군에 점령되었고 미군 포병 10명과 기관차 2대만 리 위안 역에 남았습니다. 오후 4시 윌리엄 F 소장, 대전 충남 청장은 화물차 10대를 영동역까지 수송하도록 기관차 1대에 지시를 하였습니다. 김재현 대전운전실장, 현역 황남로씨는 주문을 받고 역에 도착을 하였습니다.

이원주재 미군 장교들은 윌리엄 F 씨 등 미군을 구하기 위해서 대전역으로 내려가달라고 요청을 하였습니다. 학부장과 김재현 교수는 대전에서 수술하기로 하였습니다. 이날 오후 6시 정각 미군 30명을 태운 기관차와 옥천역장이 출동을 하였다는 설화가 있습니다.